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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

두바이를 떠나며

차완철 · 박지혜 집사 가정 (Harmony-2)
안녕하세요? 저희 가족은 2018년 12월 두바이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두바이에서의 첫해는 제가 상상하던 해외 주재 생활 딱 그 자체였습니다. 바뀐 생활환경에 불편함도 있었지만 모든 것이 새로웠기 때문에 마치 여행지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들뜬 기분과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설렘의 나날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국제학교도, 생전 처음 먹어보는 아랍음식도, 아침마다 바라보는 마리나의 풍경도, 옆집 사람이 외국인이라는 사실도 심지어 하루에 몇 번씩 들려오는 모스크의 기도소리까지도 모든 것이 저에게는 재미있고 신기했습니다. 한국에 비해 너무나 여유로운 삶, 방학마다 아이들과 가는 해외 여행까지...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즐겁고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리고 한인사회, 한인교회라는 특별한 배경은 저에게 이러한 모든 것을 완성시켜주는 마지막 퍼즐과도 같았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매일 밤마다 아이들과 기도할 때는 우리 가족이 사막의 등대, 광야의 오아시스 같은 주님의 일꾼이 되게 해달라고 했지만 실상은 우리 가족에게 두바이 한인교회는 인간적으로 만족스러운 삶의 한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랍 에미리트라는 나라는 포교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전도를 할 수도 없고, 주변에는 다들 잘 사는 사람들뿐이라 내가 딱히 도울 일도 없어 보이고, 나는 새가족으로 왔기 때문에 많은 집사님들과 셀 식구들의 보살핌과 관심을 받았지만 내가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딱 일 년 후 우리 가족이 아프리카 인도양의 섬,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지상낙원이라는 세이셀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고 온 다음날 코로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은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시겠지요. 몇 주? 아니면 길어야 몇 달이면 끝날 것 같았던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일 년이 넘게 지속되었습니다. 정말 끝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매주 하던 브런치 모임, 셀모임, 그리고 예배까지도 모든 것이 정지된 채로 누군가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것까지도 스트레스가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것은 잃어버렸을 때 그 귀함을 알게 되는 게 맞지요? 누워서 천장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교회에 간다면, 다시 설교말씀을 대면으로 듣는다면, 다시 ○○ 집사님을 만난다면, 다시 성가대에서 찬양할 수 있다면, 다시 어와나가 시작돼서 우리반 ○○를 화면이 아니라 직접 만나서 안아줄 수 있다면...
그리고 정말 긴 시간이 흘러 알바샤 성전에서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2년이 지나 드디어 다시 버두바이 성전에서 첫 예배를 드리던 날,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성전에 올 수 있다는 사실이, 화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집 소파에서가 아니라 그냥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너무 감사하고 벅차올라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많이 울어서 정말 눈이 떠지지 않을 만큼 얼굴이 붓고 그리고 나를 창피해하는 남편의 눈치를 보며 교회문을 나서던 기억이 나네요.
코로나라는 2년의 기간동안 주님께서 저에게 결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셨던,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느꼈던 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번주에 못가면 다음주에 가면 되는 곳이 아니라는 것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모든 일들이 내가 항상 살던 한국이 아니라 두바이 한인교회에서였기 때문에 저에게는 더욱 더 특별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간 시간과 기회는 절대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몸으로 깨달았어요. 그전에는 그저 피상적으로 느끼고 이론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절절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저를 한발짝 나설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어요. 항상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목표인, 앞장서지 않고 그저 숟가락만 놓고 조용히 따라가는 사람인 저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변화시켜 주셨답니다.
그래서 주재기간 4년의 마지막 1년은 셀장으로, 성가대 회계로, 어와나 교사로 나름대로 열심히 섬길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1년은 팬데믹 시대에서 다시 정상적인 시대로 회복되는 상황이었고 또 저에게는 두바이에서 주어진 마지막 1년이었기에 또 절절할 만큼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네비게이션 없이 많은 곳을 운전해 갈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지고 정든 두바이를 떠나면서 아쉬움도 많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아쉽지 않은 건, 주님께서 저에게 두바이에서 허락한 4년의 시간이 금세 흘러간 만큼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저에게 허락하신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지나가고 있기에 그 소중한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때문입니다.
그리고 두바이를 떠나는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혹시 내가 이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갈 때 이런 느낌이 들까? 라는 생각을 조금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아쉽고 안타까울 것 같고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가득할 것 같아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천국에서의 삶이 기대될 것 같습니다. 영어로 sooner or later라는 말을 직역한 표현대로, 조금 빨리일 지 조금 늦게일 지 상관없이 누구나 가야하고 언젠가는 가야 합니다. 내가 여기서 누리던 것, 가졌던 것, 익숙하고 정들었던 것 다 두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마치 내가 세상을 떠날 때 이런 느낌일까?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며 어느 교회를 섬기게 될 지, 어떤 목사님을 만나게 될 지, 어떤 성도들과 교제를 하게 될 지 떨리고 기대됩니다. 두바이에서 경험한 소중한 팬데믹의 경험으로 저는 현재가 너무나 소중해졌습니다. 그리고 40살 넘어서까지 받기만 했던 제가, 항상 사랑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좋아라고 했던 제 삶의 태도가 사랑해 주고 싶어도, 섬기고 싶어도 못하는 안달나는 시간을 겪으며 조금 바뀌었거든요. 그 마음을 가지고 저는 이제 한국으로 갑니다.